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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BL 은퇴선수 특집 2탄 - 강영숙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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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BL 은퇴선수 특집 2탄 - 강영숙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선수

(2) 강영숙

 

2010 WKBL 신입선수 선발회에서 2라운드 전체 10순위로 선발, 프로 통산 5.96득점 4.57리바운드. 강영숙은 눈에 보이는 지표로만 따지면 화려한 선수 생활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정규리그 MVP도 차지했다. 두 번의 이적을 경험했지만 KDB생명 시절을 제외하고는 항상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한 번도 어렵다는 우승을 무려 11번이나 차지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은퇴 시즌도 우승으로 마무리했다.

 

 

11개의 우승반지를 가진 선수

모든 선수들에게 궁극의 목표는 우승이다. 수많은 개인 기록상의 영광 속에서도 우승을 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선수들도 많다. 종목을 막론하고 뛰어난 기량에도 불구하고 우승컵과 유독 인연이 없던 선수들은 어떤 화려한 기록을 세워도 ‘불운’과 ‘무관’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그러나 강영숙은 달랐다. 

 

“사실 저는 운이 정말 좋은 선수예요. 항상 좋은 선수들과 함께 뛰면서 재미있게 농구를 했어요. 팀 멤버들이 정말 좋았죠. 동료 선수들 뿐 아니라 코칭스태프도 많은 도움을 줬어요. 팀이 우승을 하려면 선수들만으로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코칭스태프는 물론, 팀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중요한데, 몸 담았던 팀들마다 그런 부분들이 정말 잘 됐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강영숙이 다 된 우승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던 것은 아니다. 우승팀의 영광과 화려함의 기틀 속에 강영숙이 있었다. 인사이드에서 치열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았고, 적극적인 센터수비를 통해 팀의 궂은일을 담당했다.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는 선수들이 더욱 빛날 수 있게 만드는 특급 조연이었다. 프로 생활 15년을 그렇게 묵묵히 버텨내며 그는 11개의 챔피언 반지를 수집했다. 신한은행의 통합 6연패를 함께했고, 친정팀이던 우리은행에서 우승과 함께 선수 커리어를 마쳤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모두 저한테 특별하죠. 두 팀 모두에게 애착이 커요. 그런데 굳이 한 팀을 고르라면 신한은행인 것 같아요.”

 

2000년 우리은행의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던 강영숙은 2004년 9월, 트레이드를 통해 신한은행으로 팀을 옮겼고, 이후 선수 생활의 전성기를 맞는다. 우승팀 신한은행의 핵심멤버로 WKBL은 물론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2010-11시즌에는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다. 이후 KDB생명을 거쳐 2014년 우리은행으로 팀을 옮겼고, 두 번의 우승을 더 추가한 후 은퇴했다. 단일리그 출범 후 8시즌을 뛰면서 2013년을 제외한 7년을 우승으로 마무리했다. 그런 강영숙에게 신한은행이 특히 애틋한 이유는 무엇일까?

 

“좋은 기억이 많아요. 멤버들도 좋았고 재미있게 농구했던 시절이었어요. 운동도 힘들었고,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정말 마음먹었던 게 코트에서 다 됐던 시절이었어요. ‘어떻게 하자’고 말하고 경기에 나서면 그게 그대로 되니까 정말 재미있었어요.”

 

선수로서 가장 화려한 시절을 보냈던 신한은행 때의 기억이 그에게는 강렬하게 남아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 시즌,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낸 신한은행의 부침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고 말한다.

 

“선수시절에도 신한은행이 우승권에서 멀어질 때, 저는 우리은행으로 이적해서 우승을 했었어요. 선수는 지금 몸담고 있는 팀에서 최선을 중요하기 때문에 소속팀에 충실했고, 또 우승을 해서 기뻤지만, 만감이 교차했던 건 사실이에요. 이번 시즌 신한은행이 힘들어 하는 걸 보면서 솔직히 마음이 좋지 않더라고요.”

 

데뷔와 은퇴를 경험했던 우리은행에 대해서는 ‘고마운 팀’이라고 회상했다. 특히 그는 자신이 선수로서 기량이나 모든 것들이 내리막이었던 자신을 우리은행과 위성우 감독이 잘 챙겨줬다며, 여전히 감사하고 있다는 마음을 전했다. 

 

“정규리그 7연패에 실패했지만 그렇게 큰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신한은행 성적에 마음이 짠한 것처럼 그렇지도 않고요. 위 감독님이나 전주원 코치님이 잘하고 계시니까 크게 걱정되지도 않고요. 어쨌든 통합 6연패를 한 팀이잖아요. 감독님이랑 코치님이 12년을 연속으로 우승하신 분들인데 뭘 걱정하겠어요? 지금도 센터 없이 그런 성적을 낸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그게 지도력이라고 느껴요.”

 

11번의 우승은 강영숙에게 큰 자부심이다. 은퇴 당시에도 “솔직히 이 우승 기록은 깨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것만은 누구도 깨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사실, 지금도 그래요. 우승 기록만은 아무도 못 깼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지금 그 기록에 가장 근접한 선수가 박혜진(우리은행)인 것 같은데... 6번 우승했으니까 5번 남았네요... 쉽지 않을 걸요?(웃음)”

 

 

500경기 출전 못한 것은 가장 큰 아쉬움

원 없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만큼 은퇴 후에도 큰 미련이 없었을까? 특히 강영숙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까지 획득했다. 국가대표로도 화려한 마무리에 성공했다.

 

“처음에는 홀가분하고 좋았는데 잠시더라고요. 선수 때는 훈련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힘든 것들이 있으니까 은퇴하면 좋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쉬움이 커졌어요. 조금 지나니까 ‘1-2년 정도 참고 더 해봤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마 모든 선수들이 그러지 않을까요? 그래도 저는 은퇴 시점을 잘 잡고 마무리 한 것 같아요.”

 

그는 스스로에 대해 “대단한 선수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많은 우승 기록에 대해서도 “운이 좋았고, 좋은 지도자와 좋은 선수들과 함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모든 게 마음먹은 대로 됐고, 계획대로 됐다”며 복 받은 선수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아쉬움은 분명 존재했다.

 

“500경기를 출전하지 못한 부분은 아쉬워요. 저랑 비슷한 때를 뛰었던 선수들에게는 그 500경기 출전이 의미를 갖고 있는 부분이었는데 전 모자랐거든요. 부상으로 빠진 경기가 있었는데 그걸 채우고, 1년 정도 더 뛰었으면 500경기를 넘었을텐데... 이번에 (임)영희 언니가 600경기 출전을 달성했는데,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영희 언니는 체력이 정말 좋은 선수예요. 선수 시절에도 그게 부러웠어요. 일단 600경기라는 건 정말 꾸준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기록이거든요. 박수쳐주고 싶어요.”

 

강영숙은 프로 통산 15년간 22시즌을 뛰며 정규리그 457경기에 출전했다. 플레이오프도 82경기를 소화했다.

 

 

프로마인드를 더 갖춘 선수들이 되길

은퇴 후, 두 아이의 엄마로 육아에 매진했던 강영숙은 현재 실업 여자농구팀 대구시청의 코치를 맡고 있다. 그는 “프로에서 은퇴한 선수들과 대학을 졸업한 선수들이 주축을 이뤄서 즐겁게 농구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코치로 와서 조금 덜 즐거워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지도자에 대한 마음이 있었는데 우연치 않게 기회가 와서 팀을 맡게 됐어요. 그 전에 WKBL 유소녀들도 잠깐씩 지도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어린 학생들과 엘리트 선수 출신들을 지도하는 건 다르죠. 분야는 분명 다르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

 

은퇴 후에도 강영숙은 농구를 놓지 않았다. 지도자로 돌아오기 전에도 꾸준히 WKBL 경기를 챙겨봤다. 

 

“지금 지도자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냉정히 말하면 WKBL의 전체적인 수준이 떨어진 건 사실이에요. 솔직히 뛰는 건 좋아졌거든요. 많이 뛰고, 또 빠르게 뛰어요. 그런데 실속이 없는 게 아쉬워요. 선수 개개인 면에서 보자면 승부욕과 근성이 예전 같지 않은 것 같고요. 아! 그런데 이번 시즌에 이소희(OK저축은행)가 대단한 적극성을 보여줬던 것 같아요. 너무 예쁘더라고요. 그런 패기가 정말 보기 좋아요. 이소희나 박지현(우리은행) 같은 신입생 선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였던 게 인상적이었어요.”

 

강영숙은 자신에게 농구는 ‘삶의 일부’라고 말한다. 어렸을 때는 마냥 힘들었지만 농구의 재미를 알게 된 후로는 직업 이상의 의미였다고. 은퇴 후 아쉬운 마음을 가졌던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도자로 다시 농구와 인연을 시작한 지금은 당연히 성적에 대한 욕심과 목표가 다시 생겼다. 그리고 코트에서 활약하는 후배들과 그들을 성원하는 팬들에게도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사실 제가 농구를 그렇게 잘했던 선수가 아니라서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싶어요. 하지만 WKBL에서 뛰는 선수들이 조금 더 프로다운 마인드를 갖췄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고, 기량도 늘 수 있을 거예요. 경기 수준도 올라갈 것이고, 팬들도 더 경기장을 찾아주시지 않을까요? 팬들도 여자농구를 많이 사랑해주시고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경기장에서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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